가. Sweet Heart/7. 산다는 것은

11. 뭐든지 많이 깔아주세요

redlips 2021. 3. 19. 11:53

 

내 컴퓨터를 처음으로 구입한 게 1994년 인가보다. 당시에 옆지기랑 초등학교 1학년과 3학년을 마친 딸 둘과 용산 전자상가에 갔다. 컴퓨터 사용이 익숙한 사람은 하나도 없는 가족 구성원이 단체로 가게에 들어선 셈이다. 그런 구매 예비자들을 대상으로 구입을 설득해야 하는 판매원도 딱한 상황이었을게다.

 

으리으리한 전자상가에 들어선 순간의 나의 느낌은 포대기로 아기를 업고 시장에 처음 나온 아낙의 느낌이었다. 시골에서 상경해서 번화한 도시의 네온사인에 어리둥절한 사람처럼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컴퓨터를 사긴 해야겠는데... 상담을 통해서 사는 것으로 알고 집을 나선 내게 그들은 한글을 러시아 언어처럼 사용했다. 아는 만큼 들린다는 표현이 이런 경우에 딱 맞는 상황이다. 제주도나 북한식의 한글 표현이 아니라 서울 표준어인 한글을 사용하는 한국에서 서울 사람 사이에 영어보다 불편한 한글 소통의 첫 경험이었다.

 

내가 그런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컴퓨터 구입 후 얼마 안 있어서 윈도우 95가 나왔다. 나는 그렇게 컴퓨터의 386세대가 되었다.

 

컴퓨터는 모델도 용량도 기능도 층지게 다양해서 가격차이도 컸다. 문외한인 내게 판매자는 게임용 구매가 아니라면 중간 정도의 속도에 메모리 양도 적절한? 수준의 중간 가격 상품을 권했다. 나와 남편은 이왕 큰 맘먹고사는 것이니 부담은 크지만 최고 수준으로 구입하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싼 게 비지떡 짝 나지 않게...

 

고사양의 최신 상품으로 선택하면서 호 갱이가 안되고자 눈을 크게 떴지만 별무소용이었다. 내가 아는 척하면서 흥정하는 표현은

“뭐든지 많이 깔아주세요.” 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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