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셰틀랜드 쉽독 랄프/5. '셀티' 안녕 5 11

11. 랄프야, 그곳에서는 눈치보지 말고 마음껏 뛰어놀아

자그마한 도자기 용기에 한약봉지처럼 정사각형의 하이얀 종이로 포장된 랄프의 재가 담겨 있었다. 겨우 한 줌의 재... 랄프의 고단한 시간이 마무리되었다. 누나네 아빠랑 큰누나와 작은 누나는 집으로 오며 말은 잠기고 눈물만 그렁그렁했다. 늘 든든했던 , 그리고 털 색깔이 참 예뻤던 랄프의 재는 집에서 작은 화분위에 한 스푼씩 뿌려졌다. 그리고 달리기를 좋아했던 랄프를 위해 작은 누나 집 앞 공원 산책로의 작은 나무 발 아래에 한 스푼 올려주었다. 이후 누나네 가족은 수영장에서, 애견카페에서, 강변에서 랄프의 행복했던 시간들은 잊고 오직 미안함만 남아서 길에서 어쩌다 마주친 셀티를 보면 가슴이 싸아하다. 이제는 7년여의 시간이 지나서 랄프 이야기를 나누기가 편안해졌다. 랄프야, 누나 가족들은 랄프 많이 사랑..

10. 수리의 일기 : 랄프의 발자욱들

* 3세의 큰누나는 궁궐에서 비둘기와 대화 중 베란다의 노오란 만천홍 화분을 딛고 서서 화분 꽃대가 부러지며 화분이 엎어진 일, 흙투성이가 된 랄프의 놀란 표정, 베란다 밖 유리창 너머에 사람들이 오고 가는 풍경을 하염없이 내려다보고 서 있던 랄프... * 탐이(웰시코기)도 베란다에서 안방 훔쳐보기 어느 날 간식 쟁취로 갑자기 싸움이 붙어서 힘센 순둥이 랄프가 노쇄한 럭키를 입에 물고 공중에 들어 올려 뒤흔든 일, 뜯어말려 가벼운 상처로 마무리되었지만 많이 억울했을 랄프... 원인 제공자인 럭키는 면제되고, 랄프만 엄마에게 호되게 벌 받은 일... 베란다에 소변을 하고 들어오면서 괜스레 미안해하던 랄프... 지나는 사람들의 관심표명에 늘 당황하던 랄프, 그래도 금세 앉아서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를 기다리던...

9. 수리의 일기 : 하늘로 날아간 랄프

*랄프도 행복했던 거지? *까만 정장을 차려입은 누나네 가족들은 하늘로 날아간 랄프를 축복하며 장묘장에서 랄프의 화장(cremation)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누나네 가족들은 랄프와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았다. '발자욱' 시(poem)의 주인공이 자신이 지나온 발자욱을 뒤돌아보았듯이... 랄프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작은 누나. 형아가 데려간 수영장 '보드 위의 겁쟁이 랄프' 에피소드, 반려견 카페에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누나 다리 뒤에 숨어서 소심하게 내다보던 랄프. 아파트 뒤뜰 산책길의 나무 사이를 지그재그로 왕복 달리기를 즐기던 랄프, 뒷 베란다에 핏물을 빼기 위해 양푼 물에 담가 둔 LA갈비를 몰래 물고 나오다가 들킨 랄프의 화등잔이 된 눈... '병원을 싫어하는 랄프가 동물병원 입구에서 갑자기 ..

8. 수리의 일기 : 랄프야~, 랄프야~

아빠랑 누나들은 눈을 감은 랄프의 털을 단정하게 빗질을 했다. 그리고 나서, 마치 아기처럼 랄프의 몸을 무릎 담요로 조심해서 감싸주었다. 엄마만 빼고, 아빠랑 두 누나는 전화로 예약해 둔, 경기도에 위치한 반려견 화장장에 랄프를 데려갔다. 참 깨끗한 환경의 반려견 장묘장이다. 랄프가 화장로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누나네 가족들은 랄프와 지낸 시간들을 차례대로 꺼내서 이야기를 섞으며이어나갔다. 마치 '발자욱(Footprints)'*시의 장면처럼... 랄프야, 네 털은 정말 예뻤어. 무엇보다도 너의 든든한 자태가 우리에게 늘 위로가 되었어. 고맙고 많이 사랑해....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마음껏 짖으며 뛰어놀 수 있는 곳에서 행복하길.... *각주* (출처: Daum) - 발자욱(foot prin..

7. 수리의 일기 : 사랑해, 랄프야

누나네 아빠는 평상시와 똑같은 포즈의 잠자는 모습으로 누워있지만 이미 박제처럼 딱딱해진 랄프의 코와 귀, 그리고 궁둥이를 솜으로 막아서 더 이상 분비물이 흘러나오지 않게 주었다. 입 주변의 침도 물티슈로 정성껏 깨끗하게 닦아주었다. 작은 누나와 큰 누나는 랄프의 털을 곱게 빗질해주었다. 가슴이 뛰는 엄마는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사랑해 사랑해 랄프야~ 그리고 안녕! 그곳에선 마음껏 행복하길~

6. 수리의 일기 : 안녕!

* 겨울에 먼 길을 떠난 랄프 (출처: Daum 블로그) *추운 겨울날, 랄프는 이별을 준비하자는 전화에 한걸음에 달려온 작은 누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랄프를 품에 안고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링거를 맞혔다. 몇 시간이라도 더 눈 맞춤의 시간을 벌기 위해... 집으로 돌아온 랄프는 기적처럼 일어서서 걸음을 걸었다. 링거를 매단 채 온 힘을 다해서 작은 누나와 함께 거실을 이리저리 걸었다. 비척거리는 랄프는 작은 누나와 계속 걷고 싶어했다. 누나는 아장거리는 아기의 뒤를 따라다니는 엄마처럼 링거를 높이 들고 랄프 뒤를 따르고...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랄프는 평화로운 표정으로 거실에 누운 채, 굳어있었다.

5. 수리의 일기 : 젖은 음성으로

*랄프가 살던 거실의 겨울 그림 랄프는 거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철망 울타리를 두르고 그 안에 있게 했다. 누군가 계속 랄프와 함께 있기는 어렵고... 더운 여름과 노란 은행잎이 떨어지던 가울이 가고 겨울이 지나는 동안, 랄프와의 시간은 그렇게 지나갔다. 랄프의 소변은 자주 새어 나오고... 랄프는 자신의 몸에 채워진 기저귀를 있는 힘을 다해 물어뜯고, 분해하고, 엄마와 큰누나는 거실의 소변을 열심히 닦고 또 닦고.... 가족들이 옆으로 지나가면 랄프는 몸을 일으켜 반가움을 표시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새해를 맞이하고 아직 겨울이 머물고 있는 시간에 누나네 아빠는 젖은 음성으로 작은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4. 수리의 일기 : 랄프는 여기 저기 방울방울

*작은 누나의 결혼식에서 결혼반지를 목에 걸고 꽃길(웨딩 로드 Wedding Aisle)로 랄프 입장 가족들의 이웃 눈치 보는 스트레스도 줄일 겸 다시 랄프를 베란다에서 소변을 볼 수 있게 칭찬 요법으로 연습을 시도했다. 소변을 볼 때마다 '랄프'에게 '상품'으로 말린 쇠고기 간식을 주는 '긍정적 강화'* 훈련법이다. 뒤뜰에서 갈기를 날리며 '왕복 달리기'를 즐기던 멋있는 랄프가 아프다, 많이..... 누나랑 엄마랑 아빠랑... 모두 무거운 마음으로.. '황사 먼지 날리는 날에 마스크 쓰고 외출할 때'처럼 가슴이 답답하다. 해가 떠오른 아침인지, 해가 지는 오후인지... 혼란스러운 오후 5시처럼 아주 막막한... 베란다의 흰색 타일 위에 떨어지는, 랄프의 핑크빛 물방울의 수가 조금씩 늘어났다. 색상은 처..

3. 수리의 일기 : 랄프는 다시 실내에서

온 가족이 랄프가 환견이라는데만 충격이 커서 랄프의 소변 스트레스를 줄이는데만 마음이 쏠렸다. 건강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생각하지 못하고....... 시간 날 때마다 랄프와 나가서 뒤뜰 산책을 했던 게 공동주택의 이웃들에게는 불편이 되었다. 누나네는 오직 랄프랑 열심히, 열심히 날마다 뒤뜰 산책으로 랄프에 대한 미안함을 채워보려는 듯..... 가족들의 이웃 눈치보는 스트레스도 줄일 겸 다시 랄프를 베란다에서 소변을 볼 수 있게 칭찬 요법으로 연습을 시도했다.

2. 수리의 일기 : 소파 뒤에서 나오지 않아도 좋다

누나네 엄마는 소파 뒤에 둘둘 말아져 길게 누워있는 카펫에 눈길을 주었다. 엄마는 랄프가 훨씬, 훠얼씬 중요하므로..... 카펫이 소파 뒤에 처박혀 있는 것쯤이야 오래오래 아무렇지도 않다. 아니 소파 뒤에서 카펫이 나오지 않아도 좋다. 랄프랑 럭키랑 더 오래 살아갈 수 있다면........ 큰누나는 미안한 맘에 자꾸 랄프에게 줄을 메어 랄프의 소변산책을 나갔다.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 랄프야. 고통 느끼지 말고 잘 견디면 좋겠다.” 아픔을 견디는 슬픈 눈빛의 랄프 등을 여러 번 쓰다듬어 주었다.